내 인생의 영화 : 봄날은 간다.
오래된 메일함을 정리했다.
99년도부터 한메일을 사용해왔는데, 지금까지 쓰고 있다. ㅋ
스팸외에는 지우지 않고 다 모았더니.. 11년간의 추억들이 메일함에 고스란히 쌓여있다.
(뭐... 옛날에는 용량이 적어서 첨부용량이 큰건 상당히 지운지도...)
그 중 2001년 10월 22일에 받은 어떤 메일이 눈에 띈다. sprang day.
'봄날은 간다'는 개봉하고 며칠안되서 당시의 여자친구와 봤더랬다.
그녀는 나보다 세살 많았고 귀여웠고 따뜻했더랬다.
둘 다 '봄날은간다'를 보고 ... 감동이라기보다... 강렬한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그녀가 영화 홈페이지에서 누군가 올린 글을 메일로 보내줬었다. (맨 아래 첨부)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이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
그 해몽은... 해몽하는 순간의 감정과 상황을 반영하겠지.
영화 또한 그렇더라. 같은사람에 같은영화라도 어떤 처지에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서 받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너무 강렬하다보니 영화관에서 본 후에도 비디오로 보고 시간이 흘러 파일을 다운받아 보고 했었다. 근데 그때마다 내 머리에는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더라.
처음 영화관에 갔을 당시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이유로...
영화를 보고 조급한 마음에 그녀에게 더 집중하고 더 노력했었더랬다.
몇개월 후 이별했고. 수없이 원망하며 밤을 지새웠더랬다.
몇년인가가 흘러 영화를 다시 봤을 때 문득 상우의 행동이 거슬러보이기 시작했다.
은수가 일방적으로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보낸 건 상우였다.
그건 뚜렷하게 잘못을 저질렀다기 보다. 행동과 말들과 태도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불협화음
은수를 떠나게 한 것이 상우였듯이 그녀를 떠나게 한 것도 나였다.
치명적인 실수나 잘못이라기보다 사소하지만, 그리고 한두번은 대수롭게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
하지만, 그것이 쌓이게 되면 신뢰와 확신은 약해진다.
한번 무너진 확신. 회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를지도..
아래는 그녀의 메일에 실려있던 어느누군가의 글. 봄날은간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리는데 작가가 쓴 것인지 아마추어가 쓴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낀 감정과 느낌과는 다르지만.. (오히려 아래가 정답일지도) 누군지 글을 정말 잘썼다. 읽어보면 영화 속 이야기를 정말 잘 대입시켰다.
============== 놓쳐버린 버스 이야기 ======================
은수 :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한대가 지나가길래 내가 갈 목적지까지
가는 건가싶었는데..타고보니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내렸지요..그리고 다시 기다렸어요..
그러고 생각해보니..
전 제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또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제대로 잘 모르고 있더군요
내려서 다시 기다렸습니다...
얼마만큼 기다려야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기다림..좀 막막하더군요..
사람없는 버스 정류장이 외롭기도 하구요
근데 저쪽에서 버스가 또 한대 나타났어요..
너무 반가웠죠..
손을 흔들며 내가 여기 서있다는 것을 알렸어요.
버스는 너무나 부드럽게 제 앞에 서더군요
어서 타라고 문도 활짝 열고 먼지도 일으키지 않은채
부드럽게....그래서 탔지요..
버스 좌석에 몸을 묻는 순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어요....
이대로 가면 세상 끝인들 못갈건 없단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숨을 내 쉬고 이 버스가 내가 가야할 곳까지 데려다
줄거라고 안심하기로 했지요.
상우 : 저는 버스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번도 누군가를 제 속에 태우지는 못했습니다.
글쎄요..저도 모르는새 누군가가 타고 내리고...
그랬었는지는 모르죠...
하지만 제 기억속에는 제 속에 머물렀던 사람에 대한
애틋한 추억같은것은 없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그런데 말입니다
저쪽 생각지도 않은 버스정류장에서 한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렸나봐요...
지치고 외로운 표정이 너무도 안쓰러운 하얀 얼굴의 여자였습니다
태워줘야할 것 같았죠....
그 여자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거든요....
전 버스잖아요..못 갈것도 없지요..
전 그녀를 받아들였습니다..
피로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는 좌석에 파묻히듯 주저앉았습니다...
빨간 목도리 색깔이 선명하기도 하지요...
전 그녀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습니다...
어떡하지요...전 이미 그녀와 함께 그녀의 목적지로 향하는
꿈을 꾸기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은수 : 한동안 버스의 편안함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 버스..참 이상하기도 하지요...
처음 타보는 낯선 버스가 이렇게 편안하고 친밀할수도 있는걸까요
전 정말 단잠을 잤습니다..
가능하다면 이렇게 파묻힌채 내가 가야할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습니다
상우 : 그녀의 느낌이 제 속을 꽉 채웁니다..
사랑이란 이런 충만감을 남겨주는 것이었군요..
여태까지 그걸 모르고 살아왔던 스스로가
불쌍하게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제 속엔 그녀뿐입니다...
은수 : 잠시 버스가 덜컹거립니다...
문득 정신이 드는군요...
근데 여기가 어디인거죠? 창 밖 풍경은 왠지 낯섭니다..
갑자기 두려워지네요...
어쩐지 제가 잘못탔던 첫 버스가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것 같기도 하고....
아..갑자기 왜 이렇게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걸까요....
전 버스 창문을 엽니다...길을 확인해야 하거든요...
버스는 편안하지만 잘못된 곳으로 가서는 안되는거 잖아요....
또 한번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는 거니까....
상우 : 왠일일까요...
단잠에 취해있던 그녀....
갑자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전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녀를 붙잡아 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데...
근데 왜 저렇게 그녀는 불안해 보이기만 할까요....
제가 잘하지 못해서일까요..아님..그녀의 목적지가 변한 것일까요..
당황한듯 보이는 그녀때문에 저까지 불안해집니다...
그녀가 가고자하는 곳과 다른 길을 제가 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녀..말을 해주면 좋을텐데..
은수 : 아무래도 아닌거 같습니다..
점점 길에 대한 자신이 없어져요..
다행인지 뒤쪽으로 또 다른 버스가 한대 나타났습니다..
익숙해보이는 모습..그래요..
저 버스가 어쩌면 제가 갈길을 제대로 가 줄 버스인지도 모르겠네요
틀림없을거예요....
어쩐지 제 쪽으로 손짓을 하고 있는것으로까지 보이네요....
내려야겠습니다..근데..이 버스..참 이상하네요..
내리겠다고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긴 커녕,
정류소에 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급해져요...
이 버스도 가야할 장소가 있을텐데.....
아마도 브레이크가 고장났나봐요...
설마 저로 인한 고장은 아닐테지요?
어쨌든..문은 열립니다..미안한맘에 힐끗..
버스를 한번 돌아봤습니다...
이제 마주칠 일은 없겠지요...
이 버스가 제 길을 무사히 가길 빌어줘야겠어요
전 다른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상우 : 그녀가 갑자기 벨을 누릅니다..
그녀가 맘을 굳힌 모양이예요...
그러나 전 아직 꿈 속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문을 열어줄 순 없어요...
가능하다면 속도를 높여 이대로 달아나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요...그럴 수가 없네요...
제 속의 그녀가 너무나 힘들어하잖아요...
이젠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녀가 스스로 상처입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열어줘야 겠지요....
그녀의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그 일이 제 몫은 아닌가 봅니다....
그녀는 그래도 마지막으로 저를 한번 돌아봐주었습니다....
아프지만 그녀를 보내야 하는건가봅니다..
어느 틈에 창 밖엔 햇살이 가득합니다...
뛰어가 다른 버스에 올라타는 그녀 뒤로..
햇살이 유난히 반짝거립니다.
은수 : 새로운 버스를 타고 얼마간 달렸습니다..
이 버스 말인데요..편안하긴 한데....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잘 설명할 순 없어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저한테 목적지 따위가 애초에 있었기는 한건가요?
어쩌면 버스에 타고, 여행을 하는 이런 행동 자체가..
제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랬다면 전 실수한 거겠지요...
제가 매몰차게 내려버렸던 그 버스는
아직도 저를 그리고 있을텐데요.
어쩔까요..한번 다시 그 버스를 기다려볼까요?
운이 좋다면 다시 탈 수도 있을텐데..
가끔씩 신호등 저 편으로, 제 뒤를 따르고 있는 듯한
그 버스를 볼 수가 있거든요.....
제가 다시 내려서 저 버스를 붙잡으려 한다면
사람들은..제게 생각없는 여자라고 할테지요..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다행히도 그 버스가, 아직도 저를 위해 문을 열어준다면..
다시 타볼까 해요....
그렇지 않더라도 할 수 없는거구요
전 또다시 내리기로 결정합니다..
상우 : 그녀가 내리고 난 후, 전 한동안 그녀가 탄
새로운 버스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녀에게 제 존재를 알리려고..
그녀의 버스가 가는 길을 방해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혼자서 달리다보니
이젠 점점 거기에 익숙해지는군요.
마치 따뜻하게 몸을 데우며 찾아왔던 봄날이
뜨거운 햇살 아래 여름으로 바뀌어도, 결국 우리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사랑도 결국 계절과 다를 바가 없었던건가 봅니다...
이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녀의 목적지로 향한 여행의 동반자가
꼭 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요
어쩌면 목적지를 찾는 것이 아닌..
저와 함께 하는 여행 자체를 꿈꾸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아! 왠일일까요..저기에서 그녀가 내리는군요
제 쪽으로 다가옵니다....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요....
그러나 전 압니다.
이제 그녀의 목적은 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요..
그녀가 손을 흔들지만...전 그냥 지나칩니다...
오해하진 마세요..그녀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봄날을 다시 손아귀에 움켜쥘 수없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녀도 느끼고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나치는 순간에도 그냥 웃어주는군요....
저도 웃어주었습니다...
그녀와 저의 앞날에 대한 제 나름의 축복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녀를 지나치고...한번 뒤돌아봅니다..
그녀는 그냥 걷고 있네요.
그렇게 결정했나봅니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 봅니다..
그래요..봄날은 갔지만 여름의 가로수 빛깔도 만만찮은
생의 활력소가 될 겁니다..
그녀도 자신의 머리위로 드리워진 가로수 그늘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녀의 뒷모습이 이제는 외로워보이지가 않는군요....
은수 : 손을 흔들었지만, 버스는 그냥 제 앞을 지나칩니다..
잠시 어쩔바를 몰랐지만 곧 그냥 웃음이나는군요...
처음으로 제가 탔던 버스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씩씩하게 달아나네요....
손을 흔들고 웃어주었습니다....
왠지 그 버스에서도 저와 같은 느낌의 미소를 발견한것 같은데..
그 것이 제 착각은 아니겠지요.....
버스가 여행을잘 하길 빌어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요..?
좀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굳이 서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으려구요......
그동안 너무 버스를 갈아타느라 많은 걸 소모해버렸습니다..
다행히 그늘은 시원하고..햇살도 좋은걸요..?
걷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다보면 문득 타고 싶은 버스가 또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버스를 타고 하는 여행자체가 목적인 것을 알아버린 지금..
이제 목적지따윈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햇살이 참 눈부시기도 하지요....
플라타너스나무 큰 잎이..참...빛깔 짙기도 합니다......
상우 : 창문을 열었습니다..바람이 시원하네요.......
콧노래가 나옵니다.....
그녀도 잘 지내고 있겠지요..
언젠간 그녀 생각도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안타깝지가 않네요....
열심히 달려야겠습니다....
그게 저의 일이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태워주고 싶은 여자...또 생길까요...?
전 느낌이 아주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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